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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위에 굳게 서라
​(시119:133)

19-1222 '2019년의 성탄 신앙'

1/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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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8-14

오늘 말씀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첫 그림은 역시 ‘구유’입니다. 그러나 이 구유에 누인 아기의 모습을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으로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너무 불결한 주변 상황 때문에 갓 태어난 이 아기가 과연 살 수 있을까?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싶겠지만, 이 작고 연약한 아기는 놀라운 인생을 사셨고,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고, 승천하셨으며,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각자의 신앙의 결정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Beloved, 구유에 누인 아기로만 보겠습니까? 당신 삶의 주인으로 모시겠습니까?
가장 작은 겨자씨와 같습니다. 점점 커져가면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듯이, 구유에서 시작해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성장되는 믿음 가지시길... 할.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성탄이 주는 참 믿음의 진실을 찾는 성탄 신앙 가지게 되길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천사를 대면한 이들의 반응입니다. 
9절 봅시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한결 같이 하나님의 천사를 대면한 이들의 반응이 같습니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죄성을 지닌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둘러싸여있던 천사를 만났으니 말에요. 이거는 꼭 중죄인이 경찰을 보면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경찰이 뭐라 그랬나요? 그냥 제 발이 저리는 거에요. 괜히 잘못한 것 같고, 피해야 할 것 같고... 말이죠.
우리도 마찬가지. 하나님을 직접 본다면 죄 때문에 말로 표현 못할 공포가 다가올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이스라엘 사람들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못 쳐다봤습니다. 그런 모세도요, 백성들 앞에서 위엄 있는 척하고, 잘난 척 했어도, 히12:21 보세요.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벌벌 떨다 왔어요.
우리 같으면요, 아마도 봉헌이고 기도고 상관없이 기절부터 했을 것입니다. 심장마비라도...
그걸 어떻게 아냐?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잖아요? 목자들도, 사가랴도, 마리아도 우선적으로 천사를 만났을 때 무서워했고, 이사야는 죽게 되었다고 난리를 쳤죠. 에스겔도 그렇고, 다니엘 같은 경우는 아예 기절했다가 며칠을 앓아 누었다 일어났어요. 단8:27a “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기드온은 죽는 줄 알고 막 울었어요. 삿6: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이게 다 하나님 직접 만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쏘인 천사 보고 이런 겁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니 하나님을 직접 만난다면 어찌되겠어요? 죄인인 우리는 그 영광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천사 보내신 겁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 기쁜 소식이 곧 성탄의 소식입니다. 아이들 잘 받아먹게 후후 불어서 식혀서 준 거야.
❶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❷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이 기쁜 소식을 왜 천사들을 미리 보내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는지 아시겠죠? 안 그러면 다 죽어요. 무서워서 쳐다보지 못해요. 이것도 지금만에요. 예수님 우리 앞에 오실 때까지 만에요.
어쨌든 천사는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로 평생을 주님 앞에 있도록 잠깐만 말을 전해주고, 표적도 보여주고 해서 우리 시선을 예수께 집중하도록 하는 역할 뿐입니다.
계시록에서도 보면 사도 요한이 천사에게 절을 하니깐, 천사가 화를 내잖아요? 자기는 절을 받을 존재가 아니라고. 절과 경배는 오직 어린양 예수 우리 구주께만 돌리는 거라고.
천사가 딱 그기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았기에 죄인된 우리 인생이 보기에 좀 두려울 뿐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 중요한 것은 성탄의 복음입니다. 그들이 전해준 이 성탄의 복음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눅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두렵지도 떨지도 않고 그저 평생 주만 섬기게 해 주시기 위해서 11절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할.
핵심을 들어야합니다. “구주가 나셨습니다.”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합니까? 죄 때문에 그래. 그 인류를 죄와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주시고,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빠짐없이 충족시키는 복을 주셔서 믿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그 영광의 보좌 앞으로 나아와 영생토록 섬기게 하기 위한 구세주가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게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오직 주님만 주실 수 있는 이 평화를 주기 위해 오신 겁니다. 
그분은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 히브리어로 ‘메시야’. 선택된 자란 뜻이죠. 그러니깐 오신 예수님은 구원사역을 수행하도록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모든 권능과 능력을 부여받으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 분으로 인해 교회를 섬길 권한과 능력을 부여받았어요.할.
그리고 주이십니다. 어머어마한 호칭입니다. 성경에 20번 정도 사용되는데, 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정식 호칭(이름)으로 사용된 겁니다.
그러니깐 오직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모든 권능이 주어집니다. 오직 예수께서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만 구원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하늘의 비밀을 깨닫도록 받아들이도록 표적도 보여주고, 기적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니, 이 말을 듣는 사람들마다 어떻게 변합니까? 
오늘 본문에는 마리아나 사가랴 때처럼 천사가, 평안하라~ 이런 말 하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느낄 수 있잖아요? 그 말씀을 다 깨달은 목자들이 가지는 평안함.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이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도 또한 주의 평안함으로 감사함으로 바꾸어지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생각해보고자 하는 성탄에 대한 믿음의 진실은, 목자들에게 있습니다.
지난 주 잠깐 언급했듯이 당시 유대의 유력자들은 동방박사의 말을 듣고 다 침묵했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목자들은 당시로선 비천한 계급에 속한 이들이었습니다. 
왜 그런고하니, 그들은 직업상 양떼들과 같이 지내요. 짐승들과 같이 살다보니 자연히 사람답게 사는 것보다 짐승처럼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언제 밥 먹기 위해서 손 씻고, 발 씻고 할 틈이 있겠어요? 그 들판에서. 그러니 자연히 유대의 정결법과는 멀리 떨어진 삶을 사는 거죠. 
그리고 이들이 베들레헴 근처에서 양을 쳤다는 것은, 아마도 이들은 좀 다른 부류의 목자들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성전에서 희생제물용으로 드려질 양떼들은 따로 관리를 시켰거든요. 만약 그렇다면 이 목자들은 양을 키우면서 아주 조심해야할 부분이 바로 양을 흠 없이 키우는 겁니다. 자연히 정성을 많이 들여야 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뭐 이래되었던 저리 되었던 그들이 키우는 양떼의 소유가 누구의 소유이든, 어떤 용도로 쓰일 거라 하는 것 하고는 상관없이 이 목자들은 지금 자기들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남이 보던 안 보던 간에 정직하고 성심껏 깨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은 거죠.
시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정직하다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일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해 성실한 마음으로 하는 자 아네요?
다윗도 형들을 대신해서 밤새도록 양떼를 돌보았습니다. 그럼 형들은요? 선지자 사무엘 보러 갔죠. 여기서도 하나님께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다윗을 쳐다보셨습니다. 어쩌면 다윗도 낙심했을 수 있어요. 지금 여기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왕 될 기회는 싹~ 날라갔다.’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정직한 자의 얼굴, 최선을 다하는 자의 얼굴을 보셨죠.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면 천사가 그 앞에 나타날까요? 그리고 설령 나타난다고 해서 아무 목자들이 다 아멘으로 받아들일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직하긴 한데, 고집불통이 있어요. 그래서 정직한 건지 모릅니다. 
어떤 이는 가난하지만, 자기 잘 난 맛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만한 사람도 있어요.
결국 천사들은 어떤 목자들에게 다 나타날 수 있습니다. 꼭~ 천사 만나야하는 목자 없습니다.
여러분 이거 아십시오.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무엇을 하던 사람이든 간에, 우리는 예수를 우리 인생에서 구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천사의 소식을 듣고, 표적이 있을 거라는 그대로 달려가서 그 표적을 확인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할 수 있습니다. 안 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두렵고 무서우면서도 도망도 안 가고, 끝까지 자리 지키면서 천사의 말을 다~ 들은 이 목자들요, 은혜 받은 목자들입니다. 마리아나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날 때는 ‘은혜 받은 자야~’ 라고 했지만, 이들에게는 ‘은혜’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은혜 받은 사람들입니다. 천사가 나타나 준 것도 은혜고, 그 자리를 지킨 것도 은혜고, 가서 확인한 것도 은혜. 첫 성탄 맞이한 것도 은혜고, 모든 것이 다 은혜에요. 이들은 은혜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이 성탄의 주일을 주께 예배로 드리는 것도 은혜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인생의 내용들이 장애가 되어, 이리저리 가로막혀서 이 은혜를 맛볼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나를 위해 구주가 오셨으니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기도합시다. 주님, 이 은혜, 예수를 내 구주로 알아보는 은혜, 내 구주가 되신 예수를 평생을 따라가는 은혜를 내게 주시옵소서. 이 은혜에서 절대 떠나지 않게 하시고, 주의 귀한 손에 꼭 붙들려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그렇게 사십시다. 
주 예수여 오늘 새빛의 온 성도들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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